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자율성이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현대의 비판적 예술은 국가와 자본의 지원 체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때 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자율성이란, 국가/자본의 지원 체계 안에 머물며 그것을 예술적 실천에 대한 방해와 교란이 아니라 상호 지지와 돌봄으로 활용하는 자유이다. 근대 국가의 문화정책은, 특히 예술을 한 나라의 문화와 민주주의 발전의 지표로 삼는 국가의 정책은 비영리적, 실험적, 비판적, 공동체적 예술에 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한국의 경우 국가/자본을 향한 예술적 비판은 점차 국가/자본 내부에 수용돼왔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스스로 정치인과 관료가 되어 문화정책 기관, 제도, 법 등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업들 역시, 단순 후원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문화재단이나 극장과 전시공간을 설립하여 예술가와의 협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당연하게도 이중 일부는 예술의 사회적 개입을 지원 대상으로 삼으며 기업은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증진시킨다. 우리는 흔히 국가의 관료주의와 자본의 이윤추구가 보수적이고 상업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주목 경제의 브랜딩,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담론 등은 국가와 자본 모두에 파고들어 그들의 정책과 비지니스를 틀지운다. 이 때문에 국가와 자본은 가장 창의적인 것, 혹은 모두를 위한 창의적인 것들에 발빠르게 개입하고 투자한다.
우리는 이를 두고 국가와 자본이 “창의성(creativity)”을 통해 권위와 이윤을 증식시키기 위해 예술을 동원하고 훈육하는 상황의 한국적 예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국가와 자본을 중심으로 두고 나머지 행위자와 구성요소들을 주변화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있다. 물론 국가와 자본의 제약과 구속은 강력하다. 법의 규정, 기관의 재정적/물리적/비물리적 힘, 지원 정책의 규범적/도구적 목표, 그 외의 수많은 단서(strings attached) 등은 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마름질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참여 또한 국가와 자본의 예술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재설정한다. 비판적 예술가를 지원하는 문화정책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한 비전통적 예술 실천을 포함시킨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은 정책 바깥의 행위자들이 아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지 말라 지시를 내린 대상 예술가들의 다수는 이미 보수정권 시절 기금의 수혜자였으며 또한 일부는 실험적이고 개혁적인 정책 프로그램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를 하고 있었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나 자신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보고서에 내 이름을 언급하는 부분들에서 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키라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는 특정 산하 기관에 전달되었는데, 나는 그때 이미 그 기관이 수행하는 사업에서 이런 저런 일로 직원들과 소통을 하고 있던 차였다. 고맙게도 해당 산하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배제 지시를 회피하려 했으며 그 결과 나는 관련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 또한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해당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참여했던 주요 활동은 “한국문학의 대중화”,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관련된 활동들이었다. 나는 해당 기관을 통해 만난 해외 작가들에게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외교관 역할만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작가였고 동료였다. 더 나아가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 그것이 비단 한국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해보려 했다. 나는 이를 프로그램 내부에서, 혹은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자유시간”에 시도했다.
물론 정권에 따라 정책 영역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성향, 참여의 빈도와 정도는 바뀐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들이 통일된 관료 기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각의 기관은 고유한 정체성 및 전문성과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이것이 상위, 혹은 다른 기관과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국가 기관들 사이의 이질성과 갈등은 상식으로는 늘상 언급되지만 흥미롭게도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빈번히 무시되곤 한다. 즉, 우리는 국가와 예술가 사이의 억압/예속, 포용/배제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논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국가가 하나의 통일체인 것처럼 말이다. 정작 예술가들은 국가 기관들 사이의 비균질적 네트워크 속의 틈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정책에 참여하고 또한 도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유행을 타고 있는 기후 변화 아젠다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경우, 기후 변화에 관한 정책적 관심은 단일 국가나 개별 기관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비영리 예술/비예술 단체, 기업, 재단, 대학, 예술가 콜렉티브 들이 파트너십을 맺으며 아젠다를 제안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시스템은 EU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구축되곤 하는데, 이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이 부과하는 요구에 부응하며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과 재능과 업적으로 선택이 되었지만, 그들은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뭘 하라고 하는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그들은 매번 놀라운 적응능력을 발휘하여 과업으로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특히 그 중에서도 진지한 예술가들은, 비록 작업방식은 변경할지라도, 외부에서 부과된 아젠다와 자신이 품어온 아젠다를 조화시키려 하고 각각의 프로그램 속에서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예술가들의 임기응변 전략은 그런 식으로 발휘된다. 그들은 본래 유지해온 실천적 관심사를 적응과 협상 과정에서 지속시키고 발전시킨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지식과 기예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 문제에 개입 한다. 무엇이 예술의 사회적 개입을 일반적인 비판 및 참여와 구별시키는가? 예술의 사회적 개입은 특정한 재료들의 가공과 형식과 상징을 통해 세계의 문제에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구축된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 대안적 형상으로 다시금 세계에 제시되고 기입된다. 확실히 예술가는 무언가를 제작한다는 점에서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특히 사회적 개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비판적 사유(critical thinking)을 제작 활동 속에 녹여낸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예술의 사회적 개입은 행위(action)와 작업(work) 사이에서 진동하는 독특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행위의 휘발성과 작업의 영속성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의 모델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을 경험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집단적 노력은 운동과 서사가 되고 이는 다시금 역사가 된다. 미술사가와 이론가들은 이러한 역사 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Miwon Kwon의 <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2002)나, Grant H. Kester의 <Conversation Pieces>(2004)와 <The One and the Many>(2011)의 연구들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물론 대체로 이 책들은 작업들에 대한 비평적 접근법을 취한다.
이제 우리는 예술가의 사회적 개입에 대한 비평 뿐만 아니라 다른 접근법도 필요로 한다. 예술가들의 사회적 개입이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정의가 어떤 불확실성을 예술가들에게 부과하는지, 그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분투하는지 살펴 봐야한다. 이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개입 실천이 이루어지는 가능성(한계)의 공간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지구적이고 기술적인 의제들, 급변하는 삶과 제도 환경들은 예술적 개입의 실천의 양상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때 예술가들의 지속성과 소속감에 대한 소망은 삶과 예술 모두에 있어 더욱 절실해진다. 예술가들은 단순히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갈등하며 심지어 무관심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을 둘러싸고 압력을 가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방어기제로 나타난다. 예술가들은 말한다. “아, 그 사람, 들어봤지. 어떤 행사에서 지나치면서 만났지.”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고독에 처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기획자에게, 관료에게, 협력 파트너에게, 관객에게, 시민들에게, 동료에게 자신의 작업을 제안하고 설명해야 하지만, 그들은 예술가의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일터로, 스튜디오로, 레지던시로, 프로젝트로, 미팅으로, 생계 활동으로 부유하듯 이동한다. 예술가들을 지칭했던 “자유부동하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ual”은 이제 더 이상 고결한 정신의 상태를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그대로 재원 조달, 작업 수행, 그리고 그 과정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관객, 지역주민, 동료, 행정가 등)과의 협업 및 계약 관계와 관련된 직업적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프리랜서이고,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보따리장수(peddler)"이다. 그들에게는 정박할 거점이 필요하다. 물론 그 정박할 거점이 결국엔 사라질지라도 말이다(어떤 이들은 사라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칼 폴라니 식으로 말하면, 사라질 땐 사라지더라도 그 소멸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최적의 시기까지 미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음의 거점과 공동체와 실천 전략을 구상할 수 있으니까.
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자율성이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현대의 비판적 예술은 국가와 자본의 지원 체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또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때 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자율성이란, 국가/자본의 지원 체계 안에 머물며 그것을 예술적 실천에 대한 방해와 교란이 아니라 상호 지지와 돌봄으로 활용하는 자유이다. 근대 국가의 문화정책은, 특히 예술을 한 나라의 문화와 민주주의 발전의 지표로 삼는 국가의 정책은 비영리적, 실험적, 비판적, 공동체적 예술에 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한국의 경우 국가/자본을 향한 예술적 비판은 점차 국가/자본 내부에 수용돼왔다. 적지 않은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스스로 정치인과 관료가 되어 문화정책 기관, 제도, 법 등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업들 역시, 단순 후원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문화재단이나 극장과 전시공간을 설립하여 예술가와의 협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당연하게도 이중 일부는 예술의 사회적 개입을 지원 대상으로 삼으며 기업은 이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증진시킨다. 우리는 흔히 국가의 관료주의와 자본의 이윤추구가 보수적이고 상업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주목 경제의 브랜딩,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담론 등은 국가와 자본 모두에 파고들어 그들의 정책과 비지니스를 틀지운다. 이 때문에 국가와 자본은 가장 창의적인 것, 혹은 모두를 위한 창의적인 것들에 발빠르게 개입하고 투자한다.
우리는 이를 두고 국가와 자본이 “창의성(creativity)”을 통해 권위와 이윤을 증식시키기 위해 예술을 동원하고 훈육하는 상황의 한국적 예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국가와 자본을 중심으로 두고 나머지 행위자와 구성요소들을 주변화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기대어 있다. 물론 국가와 자본의 제약과 구속은 강력하다. 법의 규정, 기관의 재정적/물리적/비물리적 힘, 지원 정책의 규범적/도구적 목표, 그 외의 수많은 단서(strings attached) 등은 예술의 사회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마름질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참여 또한 국가와 자본의 예술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재설정한다. 비판적 예술가를 지원하는 문화정책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한 비전통적 예술 실천을 포함시킨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은 정책 바깥의 행위자들이 아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지 말라 지시를 내린 대상 예술가들의 다수는 이미 보수정권 시절 기금의 수혜자였으며 또한 일부는 실험적이고 개혁적인 정책 프로그램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를 하고 있었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나 자신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보고서에 내 이름을 언급하는 부분들에서 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나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키라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는 특정 산하 기관에 전달되었는데, 나는 그때 이미 그 기관이 수행하는 사업에서 이런 저런 일로 직원들과 소통을 하고 있던 차였다. 고맙게도 해당 산하 기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배제 지시를 회피하려 했으며 그 결과 나는 관련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 또한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해당 기관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참여했던 주요 활동은 “한국문학의 대중화”,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관련된 활동들이었다. 나는 해당 기관을 통해 만난 해외 작가들에게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외교관 역할만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작가였고 동료였다. 더 나아가 나는 그들에게 한국의 현실을 알리고, 그것이 비단 한국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해보려 했다. 나는 이를 프로그램 내부에서, 혹은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자유시간”에 시도했다.
물론 정권에 따라 정책 영역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성향, 참여의 빈도와 정도는 바뀐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문화예술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들이 통일된 관료 기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각의 기관은 고유한 정체성 및 전문성과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이것이 상위, 혹은 다른 기관과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국가 기관들 사이의 이질성과 갈등은 상식으로는 늘상 언급되지만 흥미롭게도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빈번히 무시되곤 한다. 즉, 우리는 국가와 예술가 사이의 억압/예속, 포용/배제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논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국가가 하나의 통일체인 것처럼 말이다. 정작 예술가들은 국가 기관들 사이의 비균질적 네트워크 속의 틈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정책에 참여하고 또한 도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유행을 타고 있는 기후 변화 아젠다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경우, 기후 변화에 관한 정책적 관심은 단일 국가나 개별 기관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비영리 예술/비예술 단체, 기업, 재단, 대학, 예술가 콜렉티브 들이 파트너십을 맺으며 아젠다를 제안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시스템은 EU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구축되곤 하는데, 이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각각의 프로그램이 부과하는 요구에 부응하며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운과 재능과 업적으로 선택이 되었지만, 그들은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뭘 하라고 하는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그들은 매번 놀라운 적응능력을 발휘하여 과업으로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특히 그 중에서도 진지한 예술가들은, 비록 작업방식은 변경할지라도, 외부에서 부과된 아젠다와 자신이 품어온 아젠다를 조화시키려 하고 각각의 프로그램 속에서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예술가들의 임기응변 전략은 그런 식으로 발휘된다. 그들은 본래 유지해온 실천적 관심사를 적응과 협상 과정에서 지속시키고 발전시킨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지식과 기예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 문제에 개입 한다. 무엇이 예술의 사회적 개입을 일반적인 비판 및 참여와 구별시키는가? 예술의 사회적 개입은 특정한 재료들의 가공과 형식과 상징을 통해 세계의 문제에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구축된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 대안적 형상으로 다시금 세계에 제시되고 기입된다. 확실히 예술가는 무언가를 제작한다는 점에서 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특히 사회적 개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비판적 사유(critical thinking)을 제작 활동 속에 녹여낸다. 한나 아렌트 식으로 말하면, 예술의 사회적 개입은 행위(action)와 작업(work) 사이에서 진동하는 독특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행위의 휘발성과 작업의 영속성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의 모델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을 경험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집단적 노력은 운동과 서사가 되고 이는 다시금 역사가 된다. 미술사가와 이론가들은 이러한 역사 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Miwon Kwon의 <One Place After Another: Site-Specific Art and Locational Identity>(2002)나, Grant H. Kester의 <Conversation Pieces>(2004)와 <The One and the Many>(2011)의 연구들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물론 대체로 이 책들은 작업들에 대한 비평적 접근법을 취한다.
이제 우리는 예술가의 사회적 개입에 대한 비평 뿐만 아니라 다른 접근법도 필요로 한다. 예술가들의 사회적 개입이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재정의하느냐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정의가 어떤 불확실성을 예술가들에게 부과하는지, 그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분투하는지 살펴 봐야한다. 이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개입 실천이 이루어지는 가능성(한계)의 공간에 대한 관심을 뜻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지구적이고 기술적인 의제들, 급변하는 삶과 제도 환경들은 예술적 개입의 실천의 양상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때 예술가들의 지속성과 소속감에 대한 소망은 삶과 예술 모두에 있어 더욱 절실해진다. 예술가들은 단순히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갈등하며 심지어 무관심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을 둘러싸고 압력을 가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방어기제로 나타난다. 예술가들은 말한다. “아, 그 사람, 들어봤지. 어떤 행사에서 지나치면서 만났지.” 그들은 새로운 종류의 고독에 처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기획자에게, 관료에게, 협력 파트너에게, 관객에게, 시민들에게, 동료에게 자신의 작업을 제안하고 설명해야 하지만, 그들은 예술가의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일터로, 스튜디오로, 레지던시로, 프로젝트로, 미팅으로, 생계 활동으로 부유하듯 이동한다. 예술가들을 지칭했던 “자유부동하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ual”은 이제 더 이상 고결한 정신의 상태를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그대로 재원 조달, 작업 수행, 그리고 그 과정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관객, 지역주민, 동료, 행정가 등)과의 협업 및 계약 관계와 관련된 직업적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프리랜서이고,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보따리장수(peddler)"이다. 그들에게는 정박할 거점이 필요하다. 물론 그 정박할 거점이 결국엔 사라질지라도 말이다(어떤 이들은 사라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칼 폴라니 식으로 말하면, 사라질 땐 사라지더라도 그 소멸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최적의 시기까지 미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음의 거점과 공동체와 실천 전략을 구상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