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에디토리얼
Text by Chihyung Jeon, Juhyun Cho
글: 전치형, 조주현
글: 전치형, 조주현
Oceans as Archives: Forensic Oceanography and the Sewol Ferry Data
기록보관소로서의 바다: 포렌식 해양학(Forensic Oceanography)과 세월호 데이터
기록보관소로서의 바다: 포렌식 해양학(Forensic Oceanography)과 세월호 데이터
The upper picture is of the Sewol ferry tilted, and the bottom is a scale model (No. 9929) of the Sewol ferry produced by MARIN, 573 cm long and 87 cm wide. Photo courtesy of the Sewol Ferry Special Investigation Committee and MARIN.
The upper picture is of the Sewol ferry tilted, and the bottom is a scale model (No. 9929) of the Sewol ferry produced by MARIN, 573 cm long and 87 cm wide. Photo courtesy of the Sewol Ferry Special Investigation Committee and MARIN.
사진 위쪽은 세월호가 기울어진 모습, 아래는 마린이 제작한 9929번 세월호 모형으로 길이 573㎝, 너비 87㎝. 세월호 특조위, 마린 제공
사진 위쪽은 세월호가 기울어진 모습, 아래는 마린이 제작한 9929번 세월호 모형으로 길이 573㎝, 너비 87㎝. 세월호 특조위, 마린 제공
Where are your monuments, your battles, and martyrs?
Hey, where's your tribal memory?
The sea, in that gray vault.
The sea is history. The sea has locked them up.[1]

In this epitaph-type poem, Derek Walcott depicts the sea as a "grey sky" that locks in every tangible element of history including monuments, battles, and martyrs. In th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sea turned into a space for leisure, entertainment, and relaxation while it was recognized as ‘an empty place devoid of history’ and ‘a space transcending time.’ This perception ran into a fundamental contradiction when environmentalists began to pay attention to the ocean. How can the ocean, a place located outside of history, be associated with huge changes or urgent issues? What kind of power relation is working in the ocean that is seriously threatened by human activities such as the greedy mining industry? How can we create a new sensitivity and perception?

Most of the things that happen in the sea are undetectable with our senses. A host of truths are buried at sea: how can the imperial looting and conquest of European sailing boats during the Age of Discovery from approximately 1500 to 1859 continue to their political and economic dominance today? Why did the Sewol ferry, that sank near Jindo Island eight years ago, have to be such a devastating disaster? How can the fear of exploitation and death continue in the sea, from the transatlantic slave trade to the boat refugees? Opening up ‘a gray vault’ and unmasking its deeply hidden secrets is a social responsibility for today’s science, art, and humanities to carry out together for a sustainable, safe, and better future.

On the evening of March 27, 2011, a small rubber boat carrying 72 refugees from Ghana, Sudan, Ethiopia and Niger left the coast of Tripoli, Libya for Italy. Only two weeks later on April 10, 2011, the ship was found stuck on a rock near Zliten on the Libyan coast with only 11 passengers onboard. Sixty-three of the passengers had died while aimlessly adrift in the ocean, pushed by winds and currents heading back to Libya where they fled from. They were on a rubber boat arranged by smugglers which soon ran out of fuel. Most of the 11 survivors were also barely conscious after drifting in the Mediterranean for two weeks. Two people died shortly after they were found, leaving nine survivors.
자네 기념비, 자네 전투, 자네 순교자는 어디 두었소?
이보시오. 자네 부족의 기억은 어디 두었소?
바다. 그 회색빛 지하실에.
바다는 역사. 바다가 그들을 가둬버렸소.[1]

비문(碑文) 형식의 이 시에서 데릭 월컷Derek Walcott은 바다를 기념비와 전투, 순교자 등 역사의 재료인 모든 것을 잠가놓는 ‘잿빛 창공’으로 묘사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사람들에게 바다는 여가와 오락, 휴식의 공간으로 변화하며 ‘역사가 없는 빈 장소’, ‘시간을 초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환경보호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바다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인 모순에 봉착했다. 역사 밖에 위치한 장소인 바다가 어떻게 거대한 변화나 급박한 문제와 결부될 수 있는가? 인간의 활동과 탐욕스러운 채굴경제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이곳에는 어떤 종류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감각 또는 새로운 민감성과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바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략 1500년에서 1859년까지의 대항해 시대에 지구상 모든 바다에서 벌어졌던 유럽 범선의 제국주의적 약탈과 정복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8년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가 왜 그토록 엄청난 대형 참사로 이어져야 했던 것인지, 대서양 횡단노예 무역에서부터 현대 보트 난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실향한 해안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착취와 죽음의 공포는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그 수많은 진실이 바다에 잠식되어 있다. 회색빛 지하실을 열고 그 깊이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날 과학과 예술, 인문학이 함께 실천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2011년 3월 27일 저녁, 리비아에서 일하기 위해 가나, 수단, 에티오피아, 니제르에서 온 72명의 난민을 태운 작은 고무 보트가 리비아 트리폴리 해안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불과 2주 후인 2011년 4월 10일 리비아 해안의 즐리탄 근처에서 그 배가 좌초되어 다시 발견되었을 때, 승객은 단지 11명이었다. 밀수꾼들이 마련한 그 고무 보트에 승선한 이들 중 63명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의 연료가 떨어져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그들이 도망쳐 나온 리비아로 향하는 바람과 해류에 밀리며 바다 위에서 천천히 사망했다. 11명의 생존자 대부분도 지중해에서 2주 동안 표류한 후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발견된 직후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살아남았다.
자네 기념비, 자네 전투, 자네 순교자는 어디 두었소?
이보시오. 자네 부족의 기억은 어디 두었소?
바다. 그 회색빛 지하실에.
바다는 역사. 바다가 그들을 가둬버렸소.[1]

비문(碑文) 형식의 이 시에서 데릭 월컷Derek Walcott은 바다를 기념비와 전투, 순교자 등 역사의 재료인 모든 것을 잠가놓는 ‘잿빛 창공’으로 묘사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사람들에게 바다는 여가와 오락, 휴식의 공간으로 변화하며 ‘역사가 없는 빈 장소’, ‘시간을 초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환경보호 활동가들이 처음으로 바다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인 모순에 봉착했다. 역사 밖에 위치한 장소인 바다가 어떻게 거대한 변화나 급박한 문제와 결부될 수 있는가? 인간의 활동과 탐욕스러운 채굴경제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이곳에는 어떤 종류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감각 또는 새로운 민감성과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바다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략 1500년에서 1859년까지의 대항해 시대에 지구상 모든 바다에서 벌어졌던 유럽 범선의 제국주의적 약탈과 정복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 8년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가 왜 그토록 엄청난 대형 참사로 이어져야 했던 것인지, 대서양 횡단노예 무역에서부터 현대 보트 난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실향한 해안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착취와 죽음의 공포는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그 수많은 진실이 바다에 잠식되어 있다. 회색빛 지하실을 열고 그 깊이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날 과학과 예술, 인문학이 함께 실천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

2011년 3월 27일 저녁, 리비아에서 일하기 위해 가나, 수단, 에티오피아, 니제르에서 온 72명의 난민을 태운 작은 고무 보트가 리비아 트리폴리 해안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불과 2주 후인 2011년 4월 10일 리비아 해안의 즐리탄 근처에서 그 배가 좌초되어 다시 발견되었을 때, 승객은 단지 11명이었다. 밀수꾼들이 마련한 그 고무 보트에 승선한 이들 중 63명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의 연료가 떨어져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그들이 도망쳐 나온 리비아로 향하는 바람과 해류에 밀리며 바다 위에서 천천히 사망했다. 11명의 생존자 대부분도 지중해에서 2주 동안 표류한 후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발견된 직후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살아남았다.
(Image source: Forensic Oceanography)
(Image source: Forensic Oceanography)
(이미지 출처: Forensic Oceanography)
(이미지 출처: Forensic Oceanography)
Forensic Oceanography[2], a joint project between architect Lorenzo Pezzani and filmmaker Charles Heller, used state-of-the-art forensic technologies that combined the survivors’ statements together with digital technologies such as satellite imagery, ship location information, geospatial data, and drift models to pinpoint the exact movements of the migrant ships drifting for two weeks in one of the busiest routes in the world. The results were written and published in a 90-page report (called the Report on the Left-to-Die Boat Case[3]). This tragedy, which was hard to blame on only the Libyan smugglers who sent dozens of refugees abroad on a half-fueled rubber boat for expensive tolls, was the impetus to file several lawsuits against the military from France, Spain, and Belgium.
건축가 Lorenzo Pezzani와 영화제작자 Charles Heller의 공동프로젝트인 포렌식 해양학(Forensic Oceanography)[2]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로로 꼽히는 이곳에서 2주 동안 표류한 이주민 선박의 정확한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생존자 증언과 위성사진, 선박위치정보, 지리공간지도, 표류모델 등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최첨단 법의해양학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9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Left-to-Die Boat' 사건에 관한 보고서'[3])로 작성하여 발표했다. 비싼 통행료를 받고 연료가 절반만 채워진 고무보트에 수십 명의 난민을 태워 보낸 리비아 밀수업자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 있었던 이 비극은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의 군대를 상대로 여러 법적 소송이 제기되는 사건이 되었다.
건축가 Lorenzo Pezzani와 영화제작자 Charles Heller의 공동프로젝트인 포렌식 해양학(Forensic Oceanography)[2]은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항로로 꼽히는 이곳에서 2주 동안 표류한 이주민 선박의 정확한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생존자 증언과 위성사진, 선박위치정보, 지리공간지도, 표류모델 등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최첨단 법의해양학 기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9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Left-to-Die Boat' 사건에 관한 보고서'[3])로 작성하여 발표했다. 비싼 통행료를 받고 연료가 절반만 채워진 고무보트에 수십 명의 난민을 태워 보낸 리비아 밀수업자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 있었던 이 비극은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의 군대를 상대로 여러 법적 소송이 제기되는 사건이 되었다.
A scene from the Forensic Oceanography in which Lorenzo Pezzani and Charles Heller interview Dan Haile Gebre, one of the survivors from the "Left-to-die Boat." (Image source: Forensic Oceanography)
A scene from the Forensic Oceanography in which Lorenzo Pezzani and Charles Heller interview Dan Haile Gebre, one of the survivors from the "Left-to-die Boat." (Image source: Forensic Oceanography)
Forensic Oceanography의 Lorenzo Pezzani와 Charles Heller가 'Left-to-die Boat'(Forensic Oceanography)의 생존자인 Dan Haile Gebre를 인터뷰한 영상 (이미지 출처: Forensic Oceanography)
Forensic Oceanography의 Lorenzo Pezzani와 Charles Heller가 'Left-to-die Boat'(Forensic Oceanography)의 생존자인 Dan Haile Gebre를 인터뷰한 영상 (이미지 출처: Forensic Oceanography)
The area over which passengers had been trying to cross was a part of the EU and NATO-led operation where 38 warships were deployed along the Libyan coast to very closely monitor the situation. A French warplane first realized the potential danger of the 72-passenger boat, and other relevant military aircraft noticed it several times. All boats passing through the area received alerts and signals from the Italian Coast Guard to help those passengers. Helicopters with the word "ARMY" flew over the boat two times dropping water bottles and biscuits. Despite these repeated interventions, no rescue was actually made, and almost everyone on board, including two infants, eventually died of thirst or starvation.

The sea is divided into complex jurisdictions and structured so that countries can expand their national sovereignty claims through police actions beyond the limits of their territory while eschewing obligations like rescuing a ship in distress. Forensic Oceanography (FO) has critically investigated the militarized border systems of the Mediterranean while also analyzing the spatial and aesthetic conditions of European maritime boundaries that have caused more than 16,500 deaths over the past 20 years. FO has employed surveillance techniques in a way that is ‘different from that of any common idea’ to fight violence and its underlying systems by integrating evidence and signs left in the digital sensorium such as radar data, satellite images, and ship tracking systems with human testimonies.

FO, in collaboration with networks of NGOs, scientists, journalists, and activists, has documented violence and tragedy inflicted on migrants at sea and challenged the visibility system imposed by the surveillance in the disputed area while turning out many maps, video animations, visualizations, human rights reports, and websites since 2011. In this way, FO has assumed its role in finding any specific incidents at sea within the legal structure of the EU’s maritime boundaries and clarifying its responsibility.

On April 16, 2014, three years after the "Left-to-Die Boat" incident in the Mediterranean Sea, the Sewol ferry capsized and sank on a voyage to Jeju from Incheon and 304 people died in the disaster out of 476 passengers and crew. Casualties include 325 students and 14 leading teachers from Danwon High School in Ansan on a school trip to Jeju Island for three nights and four days. The Sewol ferry disaster, which traumatized all Korean people, has become the most controversial event and driver of ideological and political conflicts in contemporary Korean history. The hull of the Sewol ferry is the most significant clue to revealing the truth of the tragedy. A multitude of inferences and interpretations vis-à-vis the state of the ferry were made while the hull was submerged in the sea for nearly three years. A lot of data was generated from both inside and outside the ship, after the hull was salvaged and brought up in March 2017. The data extracted from the hull was transferred to various places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and became the subject of intense analyses.

This data was conveyed to MARIN (Maritime Research Institute Netherlands) in Wageningen, Netherlands. At the request of the Hull Investigation Committee, MARIN conducted a number of experiments in 2018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sinking with scale models reduced to 1/25 (Model 9929) and 1/30 (Model 9930). The Sewol ferry capsized and sank only once, resulting in a disaster, but its downscaled models made by MARIN was capsized and sunk hundreds of times in a large research tank. Every time the models tilted and sank, accumulated data told us what conditions combined to cause the Sewol to sink. The collected data was sent to Korea and included in the Sewol ferry disaster fact finding report by the government investigation committee.

MARIN researchers decided to transfer the knowledge gained from the Sewol ferry model to a bigger ship. They decided to change the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regulations to prevent accidents like Sewol, caused by excessive tilt as the ship turns. MARIN expanded the single case of Sewol to create a new ship model No. 9974 that can represent passenger ships sailing around the world. Data from the new model ships is expected to be used to persuade members of the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in the future. If successful, the lessons learned from the Sewol ferry tragedy off the coast of Jindo in South Korea can contribute to the safety of all ferries traveling in the world. Sewol ferry at Mokpo New Port became models for ships 9929 and 9930 in the MARIN, and then connected again to model ships 9974, which will soon be expanded to all passenger ships.
사실 승객들이 건너려던 해상 수역은 EU와 NATO가 주도하는 작전의 일환으로 38척의 군함이 리비아 연안에 배치되어 매우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던 곳이었다. 72명의 승객이 탄 보트의 위험을 가장 먼저 탐지한 프랑스 군용 항공기를 시작으로, 이들은 관련된 군 항공기에 의해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보트는 승객을 도우라고 요청하는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의 조난 신호 경고를 받았으며, 두 차례에 걸쳐 'ARMY'라고 적힌 헬리콥터가 보트 피플 위로 날아가 물병과 비스킷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두 명의 아기를 포함하여 배에 타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결국 갈증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바다는 복잡한 관할 구역으로 분할되어, 국가들이 자신의 영토의 한계를 넘어서는 치안 활동을 통해 주권 주장을 확장해나가면서도, 조난당한 선박을 구조하는 것과 같은 의무로부터는 스스로 회피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있다. 포렌식 해양학(FO)은 지난 20여년 동안 16,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유발한 유럽 해상 국경의 공간적, 미학적 조건을 분석하면서 지중해의 군사화된 국경 체제를 비판적으로 조사해왔다. 이들은 레이더, 위성 이미지 및 선박 추적 시스템으로 구성된 바다의 디지털 센서리움 전체에 남겨진 흔적과 인간의 증언을 결합함으로써, 국경의 폭력과 폭력의 근간이 되는 제도와 싸우기 위해 감시 기술을 ‘통념과 다른’ 방식으로 동원한다.

또한, NGO, 과학자, 언론인 및 활동가 그룹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함께 2011년부터 여러 지도, 비디오 애니메이션, 시각화, 인권 보고서 및 웹사이트를 제작하여 바다에서 이주민에게 자행된 폭력을 기록하고 이 분쟁 지역의 감시 수단이 부과한 가시성 체제에 도전해왔다. 이러한 방식으로 EU 해양 국경의 법적 구조 내에서 바다의 특정 사건들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밝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중해의 ‘죽음의 배(Left-to-Die Boat)’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 전복되어 침몰해 476명 중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인솔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념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물,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기계가 되었다. 세월호 선체는 거대한 비극의 공간인 동시에 비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3년 가까이 선체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동안에도 세월호의 상태에 대한 추론과 해석이 쏟아졌다. 마침내 2017년 3월 인양되어 땅으로 올라온 이후에는 배의 내부와 외부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생성되었다. 인양 이후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는 이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선체에서 추출된 데이터는 국내외 여러 곳으로 옮겨가서 치열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세월호에 대한 데이터는 네덜란드 바헤닝언에 있는 해양연구기관 마린(MARIN)에까지 도달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마린은 2018년 세월호 선체를 1/25(9929번 모형)과 1/30(9930번 모형)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침몰 원인을 밝히는 실험을 실시했다. 세월호는 딱 한 번 전복되고 침몰하며 참사를 낳았지만, 그 과정을 재현하고 분석하기 위해 마린이 만든 세월호 모형은 연구용 대형 수조 속에서 수백 번 전복되고 침몰했다. 세월호 모형들이 한 번씩 기울고 가라앉을 때마다 과연 어떤 조건들이 결합하여 세월호를 넘어지게 했고 또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했는지 알려주는 데이터가 쌓여갔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한국으로 전송되어 정부 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보고서에 포함되었다.

마린 연구진은 세월호 모형에서 얻은 지식을 더 일반적인 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세월호처럼 여객선이 선회하면서 과도하게 기울어져 사고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규정을 바꾸는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마린은 한국에 단 한 척 존재하는 세월호의 사례를 확장하여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는 여객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모형배(9974번)를 만들었다. 새 모형배를 가지고 쌓은 데이터는 앞으로 국제해사기구 회원국들을 설득하는 데에 사용될 예정이다. 설득이 성공한다면 한국의 진도 앞바다 세월호의 비극에서 얻어진 교훈은 세계 모든 바다를 오가는 여객선들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 여전히 목포신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는 네덜란드 마린의 9929번과 9930번 모형배가 되었다가, 다시 9974번 모형배로 연결되었고, 이는 곧 모든 여객선으로 확장될 것이다.
사실 승객들이 건너려던 해상 수역은 EU와 NATO가 주도하는 작전의 일환으로 38척의 군함이 리비아 연안에 배치되어 매우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던 곳이었다. 72명의 승객이 탄 보트의 위험을 가장 먼저 탐지한 프랑스 군용 항공기를 시작으로, 이들은 관련된 군 항공기에 의해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보트는 승객을 도우라고 요청하는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의 조난 신호 경고를 받았으며, 두 차례에 걸쳐 'ARMY'라고 적힌 헬리콥터가 보트 피플 위로 날아가 물병과 비스킷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정작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두 명의 아기를 포함하여 배에 타고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결국 갈증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바다는 복잡한 관할 구역으로 분할되어, 국가들이 자신의 영토의 한계를 넘어서는 치안 활동을 통해 주권 주장을 확장해나가면서도, 조난당한 선박을 구조하는 것과 같은 의무로부터는 스스로 회피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있다. 포렌식 해양학(FO)은 지난 20여년 동안 16,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유발한 유럽 해상 국경의 공간적, 미학적 조건을 분석하면서 지중해의 군사화된 국경 체제를 비판적으로 조사해왔다. 이들은 레이더, 위성 이미지 및 선박 추적 시스템으로 구성된 바다의 디지털 센서리움 전체에 남겨진 흔적과 인간의 증언을 결합함으로써, 국경의 폭력과 폭력의 근간이 되는 제도와 싸우기 위해 감시 기술을 ‘통념과 다른’ 방식으로 동원한다.

또한, NGO, 과학자, 언론인 및 활동가 그룹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함께 2011년부터 여러 지도, 비디오 애니메이션, 시각화, 인권 보고서 및 웹사이트를 제작하여 바다에서 이주민에게 자행된 폭력을 기록하고 이 분쟁 지역의 감시 수단이 부과한 가시성 체제에 도전해왔다. 이러한 방식으로 EU 해양 국경의 법적 구조 내에서 바다의 특정 사건들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밝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중해의 ‘죽음의 배(Left-to-Die Boat)’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 전복되어 침몰해 476명 중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 이 중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인솔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념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물,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기계가 되었다. 세월호 선체는 거대한 비극의 공간인 동시에 비극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3년 가까이 선체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동안에도 세월호의 상태에 대한 추론과 해석이 쏟아졌다. 마침내 2017년 3월 인양되어 땅으로 올라온 이후에는 배의 내부와 외부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생성되었다. 인양 이후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는 이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선체에서 추출된 데이터는 국내외 여러 곳으로 옮겨가서 치열한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세월호에 대한 데이터는 네덜란드 바헤닝언에 있는 해양연구기관 마린(MARIN)에까지 도달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마린은 2018년 세월호 선체를 1/25(9929번 모형)과 1/30(9930번 모형)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어 침몰 원인을 밝히는 실험을 실시했다. 세월호는 딱 한 번 전복되고 침몰하며 참사를 낳았지만, 그 과정을 재현하고 분석하기 위해 마린이 만든 세월호 모형은 연구용 대형 수조 속에서 수백 번 전복되고 침몰했다. 세월호 모형들이 한 번씩 기울고 가라앉을 때마다 과연 어떤 조건들이 결합하여 세월호를 넘어지게 했고 또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했는지 알려주는 데이터가 쌓여갔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한국으로 전송되어 정부 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보고서에 포함되었다.

마린 연구진은 세월호 모형에서 얻은 지식을 더 일반적인 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세월호처럼 여객선이 선회하면서 과도하게 기울어져 사고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규정을 바꾸는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마린은 한국에 단 한 척 존재하는 세월호의 사례를 확장하여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는 여객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모형배(9974번)를 만들었다. 새 모형배를 가지고 쌓은 데이터는 앞으로 국제해사기구 회원국들을 설득하는 데에 사용될 예정이다. 설득이 성공한다면 한국의 진도 앞바다 세월호의 비극에서 얻어진 교훈은 세계 모든 바다를 오가는 여객선들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 여전히 목포신항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는 네덜란드 마린의 9929번과 9930번 모형배가 되었다가, 다시 9974번 모형배로 연결되었고, 이는 곧 모든 여객선으로 확장될 것이다.
Victor Ferrari, a researcher at MARIN testing Model No. 9929 on March 1, 2018. (Image source: MARIN)
Victor Ferrari, a researcher at MARIN testing Model No. 9929 on March 1, 2018. (Image source: MARIN)
2018년 3월1일 9929번 세월호 모형으로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마린 해양연구소의 빅토르 페라리 연구원 (이미지 출처: 마린연구소 제공)
2018년 3월1일 9929번 세월호 모형으로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마린 해양연구소의 빅토르 페라리 연구원 (이미지 출처: 마린연구소 제공)
Novelist Conrad describes the sailing ship as, “a fragment detached from the earth.”[4] For Foucault the ship “is a floating piece of space, a place without a place that exists by itself, that is self-enclosed and at the same time is given over to the infinity of the sea."[5] This perception refuses to regard the sea both as a physical space that exists for human labor and residence and as a place where subjectivity is formed and history is made. The sea, however, is a desperate refuge for thousands of people leaving the African continent hoping for a safer life, and a field for recording and learning to those who want to remember a disastrous tragedy. The sea is not an empty space, but rather an area where people reside. It is also a space documented with an infinite history shaped by the incessant movements of waves. It is a place between illusion and exploitation and life and death where accidental events occur and humans meet non-humans.

Most of the things that happen on the surface of that fluid space are far from the public spotlight and often remain unexplained. Forensic Oceanography (FO) adopts the sea as a witness to turn reexamined and cross-examined data and technologies generated from the illegal migration into evidence of non-ODA crimes. Since 2014, the Sewol ferry has no longer been able to move on its own, but data has traveled back and forth between South Korea and the Netherlands, spreading across the world. Sewol ferry is just an object and machine, however, the data and knowledge from the ferry is circulated widely through sea routes, sky routes, and satellites. People who are connected to the history of the ocean as the site of the disaster and the process of contemporary civil battles are "interconnected archives" as navigation communities.
소설가 콘래드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4]이라고 표현했다. 푸코 또한 “떠다니는 공간의 조각, 장소 없는 장소,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닫혀 있는 동시에 무한한 바다에 흡수된”[5] 것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인식은 바다를 인간 노동과 거주를 위해 실재하는 물질적 공간이자 주체성이 형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간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바다는 더 안전한 삶을 희망하며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절실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고, 비참한 재난을 기억하려는 이들에게는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과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다. 바다는 빈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하는 영역이며,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격렬한 만남의 장소로, 환상과 착취,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 없는 물결의 움직임으로 형성된 무한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 유동적인 공간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대중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종종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포렌식 해양학(FO)은 처음에 불법 이주의 증거로 생성된 데이터와 기술을 재조사하고 반대 심문하고 이를 비원조 범죄의 증거로 바꾸는 증인으로 바다를 채택한다. 2014년 침몰 이후 세월호는 더 이상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데이터는 한국과 네덜란드 사이를 오고 갔으며, 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월호는 하나의 사물, 하나의 기계이지만 세월호에서 나온 데이터와 지식은 바닷길로, 하늘길로, 또 인공위성을 경유하며 널리 순환된다. 재난의 현장으로서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동시대 시민 투쟁 과정에 연결되어 있는 이들은 항해 공동체로서 ‘상호 연결된 기록보관소’인 것이다.
소설가 콘래드는 대양을 항해하는 배를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4]이라고 표현했다. 푸코 또한 “떠다니는 공간의 조각, 장소 없는 장소,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닫혀 있는 동시에 무한한 바다에 흡수된”[5] 것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인식은 바다를 인간 노동과 거주를 위해 실재하는 물질적 공간이자 주체성이 형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간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바다는 더 안전한 삶을 희망하며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절실한 도피처가 되기도 하고, 비참한 재난을 기억하려는 이들에게는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과 배움의 현장이기도 하다. 바다는 빈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하는 영역이며,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격렬한 만남의 장소로, 환상과 착취,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 없는 물결의 움직임으로 형성된 무한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 유동적인 공간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대중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종종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포렌식 해양학(FO)은 처음에 불법 이주의 증거로 생성된 데이터와 기술을 재조사하고 반대 심문하고 이를 비원조 범죄의 증거로 바꾸는 증인으로 바다를 채택한다. 2014년 침몰 이후 세월호는 더 이상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데이터는 한국과 네덜란드 사이를 오고 갔으며, 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세월호는 하나의 사물, 하나의 기계이지만 세월호에서 나온 데이터와 지식은 바닷길로, 하늘길로, 또 인공위성을 경유하며 널리 순환된다. 재난의 현장으로서 바다를 둘러싼 역사와 동시대 시민 투쟁 과정에 연결되어 있는 이들은 항해 공동체로서 ‘상호 연결된 기록보관소’인 것이다.
[1] Derek Walcott, Poems, 1965~1980 (London: Jonathan Cape, 1992), 237.
[2] https://forensic-architecture.org/category/forensic-oceanography
[3] https://content.forensic-architecture.org/wp-content/uploads/2019l/06/FO-report.pdf
[4] Joseph Conrad, Nigger of the Narcissus (Garden City, NY: Doubleday, 1914), 45.
[4] Michel Foucault, “Of Other Spaces,” Diacritics 16 (1986): 22~17.
[1] Derek Walcott, Poems, 1965~1980 (London: Jonathan Cape, 1992), 237.
[2] https://forensic-architecture.org/category/forensic-oceanography
[3] https://content.forensic-architecture.org/wp-content/uploads/2019l/06/FO-report.pdf
[4] Joseph Conrad, Nigger of the Narcissus (Garden City, NY: Doubleday, 1914), 45.
[4] Michel Foucault, “Of Other Spaces,” Diacritics 16 (1986): 22~17.
issue 6
Made on
Tilda